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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일과 하기 싫은일, 20대가 생각해본 중도의 길

지완소 2019. 12. 19. 12:37

중도란 무엇일까?

신심명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선방에서 3개월간 수행한 스님들에게 행하는 법문은 중도의 길을 설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의 길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갈림길에 두고 답을 정하려 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제 3의길, 욕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누르는 것도 아닌 그저 바라보는 길을 설하였다.

이해가 되는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행동하기란 전혀 쉽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행을 해야 한다.

 

세가지 단계가 있다.

 

하나는 이치를 모르고 양극단 좌우에 치우쳐 넘어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무리 충돌하고 쓰러져도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없다. 그저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할 뿐이다.

 

두 번째는 이치를 이해하고 좌우로 넘어지며 중도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넘어지는 일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중도에 가까워 지므로 힘든 일이 곧 좋아지는 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 생각해보자.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일단 밖에 나가서 타봐야 한다.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다시금 털고 일어나 발을 굴러야 한다.

이렇듯 여러 상황에서 넘어져 보면서 '아 이럴때는 이렇게 일어나야 하는구나' 하는 배움을 통해

우리는 점점 자전거를 잘 타게 되어진다.

 

마지막은 머리도 이해하고 행동도 걸림이 없는 단계이다.

이 수준은 남이 보았을 때는 넘어지지 않은 것 같지만 나 스스로는 중도에 살짝 벗어난 순식간에 알아차리고 

다시 중도로 돌아오는 상태를 말한다. 즉 남은 못 느끼지만 나는 예민하게 상태를 살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천주교인인 김수환 추기경을 아는가?

그도 머리로 아는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라는 말을 하였으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신 성철 스님 또한 온전히 깨어있는 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우리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

아이에게 그네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어머니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었다.

하나는 아이가 그네를 타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과 다른 하나는 잘 탔으면 하는 마음.

결국 두 가지를 다 갖고픈 마음에 그네를 잡고 따라다니며 밀어주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그네를 탄다면 아이가 그네를 타려면 항상 어머니의 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다칠까 안절부절하며 아이를 지켜봐야 할까?

아니면 외면하고 집에 들어가야 할까?

 

남의 집 아이라 생각하고 그네 타는 모습을 지켜보자.

그렇게 마음먹으면 맘 편하게 바라볼 수 있고 

만약 다친다고 해도 옆집 아이라도 등에이고 병원에 가는데 내 아이라고 못할까?

이렇듯 관점을 바꾸는 연습을 해 나간다면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변함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한 여정이다.